별을 보다 우물에 빠진 이 사람이, 신화 없이 세상을 설명하려 한 사람들의 맨 앞에 섭니다.
천둥이 치는 까닭을 "신이 화가 나서"라고 답하는 사람과 "구름 속에서 무언가가 부딪혀서"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 다 틀렸을 수 있다면, 틀렸을 때 고쳐 나갈 수 있는 답은 어느 쪽일까요?
기원전 6세기, 에게해 동쪽 기슭의 그리스 항구 도시 밀레토스. 어느 맑은 밤, 별의 움직임을 좇으며 걷던 탈레스가 발을 헛디뎌 우물에 빠졌습니다.
곁에 있던 트라키아 출신 하녀는 하늘의 일을 알려는 사람이 제 발밑도 못 본다며 웃었다고 전해집니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세상 물정 모르는 학자의 우스개로 오래 옮겨 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올려다본 것은 별만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 신들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고 이 물음에 답하려 한 사람들의 맨 앞에, 훗날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를 세웠습니다.
탈레스가 살던 무렵 그리스 사람들은 바다가 거칠어지거나 땅이 흔들리는 일을 대개 신들의 뜻으로 풀이했습니다. 그런 설명은 이야기로는 그럴듯했지만, 맞는지 틀리는지 따져 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탈레스는 질문을 바꿨습니다. 흙과 돌, 나무와 짐승, 사람까지 겉모습은 제각각이지만 밑바탕에는 같은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답을 물이라고 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전합니다.
탈레스 자신의 설명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의 양분이 모두 촉촉하고 씨앗도 축축하다는 관찰에서 나온 생각이었으리라 짐작했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답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설명의 근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연에 두었다는 점입니다. 근거가 보이는 답은 틀렸을 때 다른 사람이 반박하고 고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같은 밀레토스의 후배들이 곧 다른 답을 내놓습니다.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고,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왜’에 대한 답을 받습니다. 검색 결과, 짧은 영상, 누군가의 단정적인 한마디. 탈레스가 남긴 것은 정답이 아니라 답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설명의 근거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곳에 두고, 틀렸다면 고칠 수 있게 열어 두는 것. 과학 시간에 가설을 세우고 실험으로 확인하는 일도, 그럴듯한 소문 앞에서 “그 근거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라고 묻는 일도 그날 밤 우물가에서 시작된 태도와 이어져 있습니다.
| 과목·영역 | 이 레슨과의 연결 | 성취기준 |
|---|---|---|
| 과학의 역사와 문화 — 고대 그리스의 과학 | 자연현상을 신화가 아니라 자연 속 근원으로 설명하려 한 탈레스의 사고를 조사하고, 그 방식이 오늘의 과학적 설명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이야기한다 | [12과사01-02] |
| 주제 탐구 독서 | 탈레스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인지 전언인지 전설인지 가르고, 누가 얼마나 뒤에 전했는지 따져 믿을 만한 정보를 골라 읽는다 | [12주탐01-04] |
| 독서와 작문 — 인문·예술 분야의 글 | 철학사의 한 장면을 읽고, 하늘과 발밑을 보는 두 시선에 대한 자기 생각을 글로 남긴다(생각해보기·독자 생각 남기기) | [12독작01-07] |
탈레스는 정말 일식을 예측했을까?
헤로도토스의 기록은 남아 있지만, 당시 지식으로 일식이 일어날 해를 맞히기는 어려웠다는 반론이 오래 제기되어 왔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일식 기록에서 주기를 알았다는 설명, 운이 좋았다는 설명, 후대에 덧붙은 이야기라는 설명이 지금도 맞서 있습니다.
‘최초의 철학자’라는 이름은 공정할까?
고대 그리스인들 스스로 탈레스가 이집트의 사제들에게 배웠다고 전했습니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는 이미 오랜 수학과 천문 지식이 쌓여 있었습니다. 철학의 시작을 그리스 한 곳에서 찾는 서술 자체가 하나의 관점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녀는 발밑을, 탈레스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두 시선은 정말 서로를 방해할까요? ‘남는 한 마디’의 격언과 이어서 생각해 보세요.
탈레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모두 다른 사람이 남긴 전언입니다. 남이 전한 이야기를 믿을지 판단할 때, 여러분은 무엇을 확인하나요?
지금 우리는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나’에 원자와 소립자로 답합니다. 이 답을 얻는 방식은 탈레스의 방식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요?
이 글은 위 자료를 확인해 직접 작성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의 서술 흐름을 참고했으나 특정 저작물의 문장을 옮기거나 요약하지 않았습니다. 고대 문헌의 내용은 필자가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사실 관계에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세요.